A가 내게 와서 한 소설책을 두고 말을 걸기 시작한다. 아니, 어떤 내용이길래 내가 공감할 것 같다는 섣부른 판단일까. 매우 바쁠 때였으므로 나는 "아, 그래요?"하며 적당히 대답을 하고 무심히 외면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치명적인 아킬레스 건이 하나 있다.
남들이 재밌게 읽었다는 책, 감동깊게 들었다는 음악은 반드시 꼭 찾아서 읽어보고 들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미 그 사람이 말한 책이 어떤 내용일까 참을 수 없을만큼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결국 그 궁금함을 참지 못해 그날 당장 책을 구해 퇴근 길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로부터 이틀만에 모두 다 읽어버렸다. 책을 빨리 읽는 타입이 아닌데, 아주 깔끔하게 해치웠다.
장편소설 '스타일'은 1억원의 상금이 걸린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백영옥이라는 매우 동안의 외모를 갖춘 나이 서른을 넘긴 작가의 작품이다. 당선 당시 심사평을 보자.
“젊은 세대들이 소비하고 들여다보기를 열망하는 음식, 패션, 섹스 등의 세계를 매우 역동적으로, 수다스럽게, 대단히 잘 읽히는 문체로 그려냈다. 그러면서 장을 이어나가면서 점점 흥미로움을 점층시키는 구성이 아주 뛰어나서 손에서 떼어놓기가 힘들었다는 점, 작가가 어떻게든 상처받지 않고 더러운 세계를 견디면서 진정성을 지켜가려는 젊은이들을 자기 세대로 끌어안기를 전혀 피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하여 이 시대의 피상성, 깊이 없음을 쿨하게 잘 형상화했다는 점 등이 돋보인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새로운 감각의 작가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그들의 글쓰기는 처음에 매우 낯설었다. 소설이란 모름지기 깊이있고, 밀도 있고,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그 대표적인 작가는 정이현이었다. 그의 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처음 읽었을 때 적잖이 놀랐다. 작가가 들으면 기분 나쁠 말이겠지만, 잘 갖추어쓴 인터넷 소설같기도 했다. 하지만 글의 역량으로 볼 때 절대 만만찮게 볼 수 없는 작품이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어떠한 소설을 두고 얘기할 때 '정이현 스타일이네'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 소설 어때?" 물으면 "음, 약간 정이현 소설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어쩌구 저쩌구"하며 답을 하는 식이다. 매우 도시적이고 가독성이 뛰어나며 일종의 쿨한 소설을 말한다.
이제 소설속의 여주인공들은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며 야간 학교를 다니거나, 이혼한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해 홀로 꿋꿋히 일어서려 발버둥 치지 않는다. 세월은 흘렀고, 세상은 변했으며 이제는 더이상 먹고 살 걱정을 하는 주인공은 없다. 압구정동이 배경으로 나오고, 여주인공들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뚜껑이 열린 스포츠 카에 올라타 드라이브를 한다.
어쨌든 A의 말대로였다. '스타일'은 정말 심하게 공감이 갔다. 명품에 눈이 가면서도 불쌍한 아이들을 돕고 싶어하는 그 이중성에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도 현실감 있었고, 결국 화해와 용서로 끝을 맺는 결말 또한 결코 싱겁거나 허무하지 않았다.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는 소설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작가의 재치와 유머가 넘쳐 흐른다.
그런데, 과연 남자들이 읽어도 재밌을까는 의문이다.
- J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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